베트남

달랏과 김진국 교수

abstT 2023. 12. 7. 23:40

달랏의 아버지

 1945년생인 김진국 교수는 대구 효성 여대 졸업 후 교수로 재직중 1992년 일본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호찌민 대학교의 한 교수와 만나며 베트남과의 연이 시작되었습니다. 화훼 장식학과라는 생소한 학문을 연구하여 난의 개화 조절에 관한 연구로 한국에서 최초로 화훼장식학 박사를 취득하였으며 1993년 베트남 달랏의 방문하였습니다. 달랏은 꽃의 도시 또는 봄의 도시라 불리며 1년 365일 꽃이 지지 않는 도시로 화훼를 연구하던 김진국 교수에게는 정말로 꿈과 같은 도시 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 달랏이란 지역에 정착을 하게 되고 베트남에 있던 비닐하우스 기술을 크게 발전시키는데 큰 공을 세운 인물입니다. 베트남에서도 기존에도 비닐하우스는 있었지만 단열이 잘 되지 않고 재질이 약해서 오래가지 못하는 부분을 개선하여 달랏에 비닐하우스를 통한 재배 공법과 전기 조명을 통한 꽃의 개화시기를 조절하는 방법을 통하여 달랏 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를 하였고 달랏에서는 달랏의 아버지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농사만 했나요?

  아닙니다. 처음 베트남에 정착하게 된 이유는 달랏의 자연환경의 이유가 가장 큽니다. 언제나 풍부한 일조량과 비옥한 토지 그리고 땅이 마르지 않도록 내리는 비 이것은 화훼를 연구하는 학자에게는 최적의 조건이 였으며 이를 위해서 베트남에 처음 오기는 하였으나 다른 업적을 많이 이뤘습니다. 

  제일 먼저 자신의 연구를 통한 베트남 화훼 재배 기술을 전파하여 달랏의 화훼 생산력을 업그레이드 하였습니다. 그냥 씨를 뿌리고 가만히만 둬도 꽃이 피는 달랏의 땅에 빠르게 성장하고 빠르게 개화를 할 수 있도록 전기 조명을 통한 개화 방법을 전파하였습니다.

  그리고 달랏의 대학교에 한국어 학과를 만들어 한국어를 전파하고 학술원을 개설하여 한국과 베트남의 문화 교류를 활성화하는 데에도 크게 기여를 하였습니다. 

달랏에 비닐하우스가 많은 건 김진국 교수 덕?

 80% 정도 맞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존에 베트남에도 비닐하우스가 없던 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내구력이 약하고 보온이 잘 안 되기 때문에 비닐하우스를 통한 재배가 서행을 하진 못했습니다. 베트남 이란 나라는 항상 습하고 더운 날씨를 유지를 하면서 나라 자체가 온실이기 떄문에 비닐하우스의 역활이 크지 못했지만 달랏이란 곳은 해발 1500M의 고산 지대로 영상 10도 까지 떨어지는 날씨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른 베트남 지역과는 다른 생태계와 자연 환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작은 시골 마을 이였던 과거 이기에 과학을 통한 기술발전이 이루어 지지 않을 당시에 김진국 교수가 화훼를 연구하며 가지고 있던 지식을 전파하며 비닐 하우스를 통항 화훼 작물과 딸기생산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베트남과는 연관되는 인연

  김진국 교수의 아버지는 허성호씨는 김해 허씨로 베트남 출신입니다. 아버지가 허씨인데 김진국 교수? 의아 할수 있는데 한국사람과 결혼한 허성호 씨는 한국인 아내의 김순자 씨의 성을 따라 김씨로 개명으 하였고 그로 인하여 김진국 교수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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